삶과 치유를 담은 달항아리의 미학
한때 약사로서 오랜 시간 인류의 건강을 돌보았던 신인선 작가가, 이제는 붓을 들고 삶을 치유하는 화가《신인선 서양화전》이 오는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신인선 작가가 약사에서 화가로 전향한 이후,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정서를 서양화의 언어로 풀어낸 작품들로 구성된다. 작가는 특히 한국적인 ‘달항아리’를 중심 소재로 삼아, 그 안에 우리 삶의 시련과 회복, 그리고 어머니의 품 같은 따뜻함을 담아낸다.
달항아리는 단순한 도자기가 아닌, 시간의 흔적과 여백의 미, 그리고 포근한 정서를 상징하는 존재로, 작가의 화폭 속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문살, 한지 등 전통적인 소재와 유화의 깊이 있는 질감을 결합함으로써, 동양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서양의 색채감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독창적인 미감을 선보인다.
서양화의 구상력과 동양적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문화의 융합을 넘어, 동서양 미학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예술적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작가는 달항아리를 바라보며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고 말한다. 보름달을 닮은 달항아리는 깊은 밤의 달빛처럼, 우리 각자의 소망과 염원을 담는 상징적 매개체가 된다. 그 보름달 속에는 정화수를 앞에 두고 자식의 안녕을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겹쳐진다.
그녀는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으로 달항아리의 형태를 더욱 꽉 채워 나간다. 단순한 순백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려는 데 그치지 않고, 어머니의 사랑처럼 가득 찬 따뜻한 정서를 담아내고자 한다. 작가는 이 사랑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도 전해져, 바쁜 일상과 고단한 삶 속에서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전한다.
작품 속 달항아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캔버스 위에 한지를 배접하여 전통적인 질감을 살리거나, 염색된 한지를 덧붙여 더욱 풍부한 표면감을 만들어낸다. 또한 사찰의 꽃살문 문양을 차용해 장식적인 요소로 활용하거나, 한지를 찢어 붙여 구름 낀 보름달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매화꽃과 함께 구성된 달항아리는 아득한 봄날의 향기를 전하기도 한다.
작가의 작업은 현상학자 메를로퐁티가 말한 바와 같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얽힘’을 담아낸다. 그녀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감각이 함께 얽힌 지각의 과정을 화폭에 담아낸다. 약사 출신으로 이과적 배경을 지닌 그녀는 자신이 화가가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재를 탐색하고 재료를 실험하며 표현의 방법을 찾아가는 이 과정은, 자신에게 있어 삶을 채워나가는 충만한 여정이자, 깊은 희열의 시간이었다고 전한다.
작가는 앞으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탐색을 이어가며, '그림으로 사유한다는 세잔의 말처럼, 예술을 통한 깊은 사유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