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숨결 위에 피어난 현대 문인화의 새로운 지평”
전통 문인화는 단순히 사군자를 그리는 화목의 범주를 넘어,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 예술가들이 추구해 온 정신적 수양과 내면적 성찰의 방식으로 자리해 왔다. 오늘날 한국 화단에서도 문인화는 새로운 시대적 감각과 만나며 또 다른 변주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 마련되는 해송 이희대의 첫 개인전은 이러한 전통과 현대의 지층이 서로 호응하며 생성하는 새로운 미감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해송 이희대 문인화전; 전통의 숨결 위에 피어난 현대 문인화》은 오는 12월 9일(화)부터 12월 14일(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개최된다.
해송 이희대는 사업가와 문인 화가라는 두 가지 직업을 병행해 오고 있다. (주)S&T라는 중견기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서화연구실을 찾아 붓과 씨름하며 운필(運筆)과 용묵(用墨)을 연마해 오고 있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그림 앞에 머물며 공부해 온 그의 꾸준함은 단순한 취미의 범주를 넘어 전문 서화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그간 여러 공모전과 초대전에 참여하며 작가로서의 역량을 키우고,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전문적인 안목을 넓혀왔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그에게 단순한 결과물의 나열이 아닌, 오랜 시간 축적된 실험과 성찰의 결실이며, 동시에 작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사군자(四君子)를 중심에 두고 있으나, 그 표현 방식은 전통적 문인화에서 흔히 보아온 기법들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해송 이대희는 일반적인 화선지가 아닌 광목과 천에 작업하여 재료의 물성을 확장하고자 했다. 여기에 염색 기법을 접목함으로써 화면은 단순한 바탕을 넘어 색층이 살아 있는 생명성을 갖게 된다. 염색된 광목 특유의 자연스러운 결, 먹의 스밈이 남기는 유기적 흔적, 그리고 그 위에 더해지는 채색의 대비는 화면 전체에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인 긴장을 만들어낸다. 원단(면, 폴리)을 이용한 염색(천연)바탕으로 먹과 아교, 전통안료(색채, 분채)를 이용해 제작한 작품 25점을 선보인다. 이처럼 재료의 선택에서부터 이미 작가는 전통의 틀이 허용하는 경계를 넘어 더 넓은 조형적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사군자라는 전통적 소재는 오랜 시간 동안 예술가들에게 ‘성정(性情)의 거울’이며 ‘내면의 풍경을 투영하는 도구’였다. 해송 이희대가 바라보는 사군자 ‘매(梅)’는 겨울의 고요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나는 생명성을 상징하며, ‘난(蘭)’은 은은한 향기를 내면의 품격으로 승화시키고, ‘국(菊)은 절개의 상징으로서 늦가을의 사유적 정조를 품고, ’죽(竹)‘은 흔들림 없는 중심을 지닌 군자의 기개로 재해석된다.
작가는 이러한 상징체계를 단순히 형사(形似)에만 치우쳐 그려내지는 않는다. 색과 선, 질감의 변주를 통해 각각의 사군자를 인간 내면의 정신적 풍경으로 확장한다. 때로는 절제된 붓의 흐름 속에서 고요함이 드러나며, 때로는 염색된 바탕 위로 번지는 먹의 농담이 자연의 리듬을 들려주듯 화면을 채운다. 이처럼 해송의 사군자는 전통적 정신성을 현대적 조형 감각으로 해석해 내며, 그만의 독자적 언어로 재탄생한다. 또한, 작가가 선택한 ‘광목’이라는 재료는 문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화선지와 달리 광목은 먹과 물감을 머금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작가의 붓질은 더욱 대담하고 넓은 호흡을 요구한다. 먹의 번짐이 예측 불가능한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염색된 천의 색조가 먹과 채색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감싸기도 한다. 이러한 재료적 우연성은 작가에게 긴장감을 부여하며, 동시에 새로운 형태와 공간을 발견하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 된다. 이는 곧 전통 문인화가 지닌 정신적 엄숙함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미감과 실험정신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업적 증거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전통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과 현대의 변증법적 만남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먹의 농담이 만들어내는 시간성, 염색 천이 지닌 물질성, 색채가 불러오는 생동감은 화면 위에서 서로 교차하며 하나의 새로운 조형적 질서를 구축한다. 이는 문인화가 단지 고전적 형식 속에 갇혀 있는 장르가 아니라, 다양한 재료와 표현 실험을 통해 충분히 확장될 수 있는 살아 있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해송 이희대의 이번 첫 개인전은, 전통 문인화의 깊이와 현대적 감각이 조화롭게 만나는 자리로서 앞으로의 작업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는 오랜 시간 붓을 통해 내면을 다져온 사람이며, 그 성실한 축적은 이번 전시를 통해 빛을 발한다. 전통을 존중하되, 그 속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표현을 탐색해 온 그의 태도는 이후의 작업에서도 더욱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 전시가 작가에게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 이어질 그의 예술적 여정이 더욱 깊고 단단하게 성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