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현’에서 ‘추상’으로, 그리고 ‘존재’에서 ‘관계’로 확장되어 진화를 이어오는 현대 미술가 이혜인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이혜인 회고전》이 오는 10월 13일(화)부터 18일(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수채화를 기반으로 한 초기 구상회화에서부터 조각보의 조형성을 탐구한 작업, 여행을 통해 자연의 시간과 삶의 흔적을 추상화한 〈길〉 연작, 색채를 통해 기억과 존재를 탐색한 〈Thanks〉와 〈There is〉, 그리고 최근의 〈Dream〉, 〈Among the Life〉, 〈Among us〉에 이르기까지 20여년간 이어진 이혜인의 조형적 변화와 사유의 흐름을 되짚어보는 소중한 자리이다.
이혜인은 초기 수채화 작업에서 대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탄탄한 재현적 묘사력을 보여 왔다. 이후 한국 전통 규방문화의 정서가 담긴 조각보의 조형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물의 외형을 충실히 재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형태와 색채의 본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즐거운 날〉, 〈내 안에〉 연작은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작가가 자신만의 추상적 조형언어를 모색하기 시작한 중요한 작업들이다. 2017년을 전후해서는 작품세계에 또 한 번의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2016~2017년 티베트와 네팔, 인도를 여행하며 마주한 광활한 자연과 낯선 풍경은 작가의 시선을 외형적 재현에서 자연의 시간과 흔적을 표현하는 추상회화로 이동시켰다.
〈길〉 연작에서 작가는 캔버스에 물감을 두텁게 쌓고 표면을 긁어 수많은 선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냈다. 흔들리고 끊어지며 중첩되는 선들은 오랜 세월 축적된 지층과 대지의 결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시간과 삶의 흔적을 담아낸다. 특히 히말라야에서 만난 오색 타르초(Dar Cho)의 반복적인 선과 색채는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여정과 자연의 시간을 상징하는 조형언어로 화면에 자리 잡았다. 2020년 이후 발표한 〈Thanks〉와 〈There is〉에서는 선이 점차 사라지고 색채가 화면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Thanks〉가 행복했던 순간과 지나온 삶에 대한 기억, 감사의 정서를 절제된 색채로 표현한 작업이라면, 〈There is〉는 구체적인 대상과 서사를 넘어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이 시기부터 색은 형태를 보조하는 수단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 존재를 환기하는 독립적인 조형언어가 된다. 화면 역시 더욱 단순해진다. 선과 색면, 여백이라는 최소한의 요소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다가간다. 그리고 2024년 〈Dream〉에서 〈Among the Life〉, 최근의 〈Among us〉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이혜인의 회화가 ‘개별적 존재’에서 ‘타인과의 관계와 공존’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근작 〈Among us〉는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작업이다. 화면을 부유하는 둥근 사각형의 색면들은 서로 다른 크기와 색, 농도를 지닌 채 홀로 존재하기도 하고, 나란히 만나거나 서로 겹치기도 한다. 각각의 색면은 하나의 독립된 조형요소이면서 동시에 개별적인 존재를 상징한다. 색면과 색면 사이의 간격과 중첩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거리와 만남, 소통과 교류를 은유한다. 따라서 〈Among us〉에서 ‘우리’는 동일한 존재들의 단순한 집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개별성이 유지되면서도 만나고 겹치고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가는 ‘관계의 총체’에 가깝다. 〈There is〉에서 ‘나는 존재한다’는 질문을 탐색했다면, 〈Among us〉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이혜인의 작품은 형태와 표현을 최소화하고 선과 색면, 반복과 여백이라는 제한된 요소로 화면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즘의 조형어법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작가의 주관적 감정과 서사를 최소화했던 미니멀리즘과 달리 이혜인은 절제된 형식 안에 삶의 기억과 감정, 존재와 관계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형태가 단순해질수록 의미가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으로 깊어진다는 점이 이혜인 회화의 특징이다. 작가에게 ‘덜어냄’은 비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과정이며, 절제는 침묵이 아니라 더욱 깊은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작업은 미니멀한 조형어법과 서정적 추상이 교차하는 ‘감성적 미니멀리즘’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번 회고전은 이혜인이 걸어온 작품세계를 ‘재현에서 추상으로, 선에서 색으로, 내면에서 존재로, 다시 존재에서 관계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념비적 전시가 될 것이다.
대백프라자갤러리 김태곤 큐레이터는 “이혜인의 작품에서 형태와 색채는 점점 단순해졌지만 그 안에서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오히려 깊어지고 심오해져 간다. 〈Among us〉의 작은 색채 단위들이 서로 다름을 간직한 채 만나고 겹치며 하나의 화면을 이루듯, 근작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우리는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가?’라는 관계와 공존의 메시지를 담은 상징적 풍경을 그려낸다. 특히 오랜 시간 병마를 견디며 삶을 성찰해 온 작가에게 종교적 신념과 예술적 실천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고통과 시련을 내면의 성찰과 감사의 정서로 승화시켜 온 그의 작품들은 깊은 감동을 넘어 삶과 존재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하는 숭고한 울림으로 다가 온다.”라고 전시평을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