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개봉된 SF 대작 《아바타(Avatar)》는 전 세계 수억 명에 이르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하나의 이미지와 세계관에 전 지구적 시선이 집중되는 보기 드문 문화적 현상을 만들어 내었다. 이 영화는 빛과 색채, 디지털 기술을 통해 ‘모든 생명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더 큰 생명 세계를 이룬다.’라는 사유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도 시각예술계에서 지속해서 회자하는 작품이다. 판도라의 세계를 특징짓는 핵심적인 시각적 장치는 ‘생물발광(bioluminescence)’이다. 식물과 동물이 스스로 빛을 내고, 그 빛들이 서로 반응하면서 숲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신경망처럼 연결된다. 여기에서 빛은 단순히 대상을 비추는 조명을 넘어 생명의 존재를 드러내고, 개별 생명체들이 하나의 유기적 관계망을 이루고 있음을 감각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시각언어로 확장된다.
서양화가 문형철의 근작 〈꿈(Dream)〉은 영화 《아바타》가 보여준, 수많은 개체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유기적 생명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회화적으로 구현해낸다. 작가는 ‘나비’라는 개별 생명체를 반복하고 중첩해 거대한 꽃의 형상으로 피어나게 하거나, 때로는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며 환상적이면서도 충만한 생명의 기운을 자아내기도 한다. 개별적인 나비들이 군집을 이루는 순간, 화면에는 흥미로운 시각적 전환을 보여준다. 이는 수많은 나비가 하나의 거대한 꽃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꽃을 찾아 날아드는 나비라는 자연의 익숙한 관계가 뒤집혀, 꽃을 향하던 나비가 이제 스스로 꽃이 되는 역설적인 변이를 시각화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비와 꽃은 더 이상 유혹하는 대상과 그에 이끌리는 존재로 분리되지 않는다. 유혹하는 것과 유혹되는 것, 개체와 군집, 부분과 전체가 하나의 형상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상호 생성의 관계로 작용한다는 점은 문형철의 조형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한 마리의 나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꽃의 형상은 수많은 개체가 서로 관계를 맺고 결집하는 순간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화면에 연출된 꽃은 단순한 자연물의 재현이라기보다 개체들의 연결과 군집을 통해 생성된 새로운 생명적 형상으로 읽을 수 있다. 가까이에서는 무수한 나비의 날개와 몸짓이 보이지만, 시선을 뒤로 물리면 개별적인 나비의 형상은 사라지고 하나의 거대한 꽃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부분과 전체가 끊임없이 서로의 모습을 바꾸는 과정에서 현실의 생명체는 환영의 이미지로 전환되고, 다시 그 환영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관람자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이러한 변화는 작가가 그동안 구축해온 조형적 질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도 할 수 있다. 나비와 꽃이라는 익숙한 자연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개체와 군집, 생명과 이미지, 현실과 환영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수많은 개체가 관계를 맺고 결집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새로운 생명의 질서’를 보여주고 있다.
1993년 《제1회 매일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가진 첫 개인전(1994년, 봉성갤러리)에서 작가 문형철은 음화사진을 차용한 듯한 독특한 네거티브 기법을 통해 상실과 소외, 흔적 등 현대인의 실존적 고뇌를 실체가 증발한 허상처럼 드러낸 작품들을 선보였다. 〈상실-그리고 흔적〉 연작에서는 회갈색조의 화면에 헝겊과 필름 등을 콜라주하고 문자와 기호를 병치함으로써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의 흔적들이 중첩된 이질적이고 복합적인 공간을 구축했다. 여기서 인간의 형상은 온전한 실체라기보다 사라지고 난 뒤 남겨진 잔상에 가까우며, ‘흔적’은 부재한 존재를 역설적으로 환기하는 조형적 장치로 기능했다. 이후 2000년 맥향화랑 초대전에서 작가는 온전한 신체와 대비되는 왜곡되고 파편화된 인체를 화면에 등장시키며, 소외와 부조리한 인간의 실존에 천착하는 태도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이전의 네거티브 이미지가 지닌 ‘부재의 흔적’에서 한 걸음 나아가, 불완전하고 뒤틀린 신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불안과 상처를 직접 드러내려는 변화였다. 세기말적 혼돈과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듯한 화면 구성 역시 한층 과감해졌으며, 새로운 조형적 변신을 시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진 〈생명의 노래〉 연작에서는 인간 실존을 상징하는 장치로 ‘그물’을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단색조의 평면 위로 그물망이 펼쳐지고, 그 위를 부유하듯 떠도는 인체의 파편들은 마치 함정이나 덫에 포획된 존재처럼 묘사되었다. 잔뜩 웅크린 신체들은 광활한 우주를 목적 없이 떠도는 운석이나 길을 잃은 미아를 연상시키며, 인간이 세계 속에서 경험하는 고립과 불안, 존재론적 고독을 메타포적 조형 언어로 가시화했다.
2006년을 전후한 문형철의 회화에서 주목되는 변화는 인간의 실존을 대변하던 신체가 화면에서 점차 퇴장하고, 그 자리를 자연의 유기적 형상과 강렬한 색채가 대신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그가 그려낸 자연은 사실적 재현의 대상은 아니었다. 확대되고 중첩된 식물의 형상과 네거티브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청색·녹색·보라색·적색의 비현실적인 색채는 자연을 익숙한 풍경으로부터 분리해 낯선 감각의 공간으로 전환을 꾀했다. 사진이나 디지털 이미지의 색상 반전을 연상시키는 인공적인 색채 역시 현실의 자연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작가의 기억과 감각을 통과해 변환된 ‘제2의 자연’을 시각화했다. 이는 1990년대 〈상실-그리고 흔적〉에서 부재와 상실을 드러내던 네거티브적 조형 감각이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자연의 생명성과 감각적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징후였다. 결국, 이 시기의 자연은 바라보는 대상이라기보다 그 내부로 관람자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감각적 장(場)이며, 이후 그의 작업이 꽃과 나비, 군집과 생명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을 예고하는 중요한 조형적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자연과 풍경은 전통적인 서양미술에서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대상으로 그려져 왔지만, 실제 자연에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냉혹한 경쟁이 존재한다. 회화의 대표적 소재인 꽃 역시 아름다움과 순수, 사랑과 생명의 상징으로 그려져 왔지만, 꽃은 단순한 장식적 대상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의 주의를 끌어 번식을 이어가는 생물학적 존재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자연의 생물학적 양면성은 문형철의 조형 감각과 맞닿아 있으며, 작가는 나비와 꽃 사이에 존재하는 유혹과 이끌림의 관계에 깊은 조형적 관심에 천착해 있다. 꽃이 나비를 끌어들이듯 꽃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시선과 욕망을 자극하고, 수많은 나비는 반복과 결집을 통해 다시 하나의 거대한 꽃으로 변모하면서 새로운 생명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조형적 변주는 결국 ‘현실의 창(窓)으로 본 생명의 재현’이라는 작가의 일관된 미의식을 이어가면서, 개별적 생명의 재현에서 나아가 관계와 결집을 통해 새롭게 생성되는 생명의 질서로 그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문형철만의 조형 어법이다. 특히 얇은 금속판을 오려놓은 듯한 나비의 부피감은 뚜렷한 명암의 변화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며, 화면 전체를 관통하는 유기적 리듬과 조율은 화면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더불어 운집한 나비의 가장자리에서 은은하게 번져 나오는 빛은 마치 생물발광을 연상시키며, 각각의 나비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한 신비로운 생명감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빛의 표현은 〈Dream〉 연작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조형적 요소가 된다.
결국 문형철의 회화에서 나비는 단순한 자연의 재현을 넘어, 아름다움을 향해 끊임없이 이끌리는 인간의 욕망을 은유하는 상징적 존재로 확장되고 있음을 지각하게 된다. 수많은 나비가 결집해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 유혹하는 것과 유혹되는 것, 욕망의 대상과 욕망의 주체는 서로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생명의 풍경을 생성하는 관계적 의미를 완성한다. 이는 문형철이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생명에 대한 사유가 개체의 재현을 넘어 관계와 공존의 세계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형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상실과 소외의 흔적으로 출발한 그의 회화가 인간의 신체를 거쳐 자연과 생명으로, 그리고 다시 개별 생명의 관계와 결집으로 확장되어왔다는 점에서, 〈Dream〉은 문형철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생명에 대한 사유가 새로운 조형적 질서로 피어난 회화적 탐구의 결실이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